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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 북 경호를 맡는 구르카 용병들이 화재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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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카는 작은 나라 네팔의 군인들로 네팔의 몽골계 소수 인종인 구르카 인들로 구성돼있는 세계 최고의 용병이라고 손에 꼽히고 있습니다. 이들이 세계 최강의 용병이라고 불리게 된 것에는 과거의 전해져 온 사건이나 활약 등으로 세계 최강 용병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르카(Gurkha)는 네팔 중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몽골계 소수 부족입니다. 1814년 영국군 침공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부족이기도 하는데요 당시 최신 무기로 무장한 영국 군들은 쿠키리라는 구부러진 검으로 대적하던 이 구르카 부족들의 용맹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 전투력을 높이 사 용병으로 고용하기도 하였다고 하는데요 흔히 구르카 전쟁이라고 불리는 1814 - 1816의 구르카 전쟁으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 네팔의 구르카 정부는 인도의 침범하여 영국을 도발하였고, 그의 화가 났던 영국은 네팔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2년여간의 전쟁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결과야 말할 것도 없이 영국의 승리였습니다.


구르카 민족은 이상하게 생긴 휘어진 칼을 소지하고 다니는데 이 칼이 쿠크리(khukri) 라는 칼로 칼의 위력이 소총을 박살 내버릴 위력을 가진 것으로 당시에 최신의 장비로 무장한 영국군을 활과 돌팔매질 그리고 쿠쿠리라 불리는 네팔의 전통 단검에 도륙을 당하게 되며 영국은 황당함과 당황스러운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는데요 이에 영국군은 구르카 부족과 용병 계약을 체결하며,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1차 세계대전을 지나 2차 세계대전인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을 상대로 전설이 되게 되었는데요 구르카족은 이후 영국 용병으로 세계 곳곳의 전장을 누비며 백병전 일인자로 이름을 떨치며 고산지대 출신으로 폐활량과 지구력 등 신체 조건이 뛰어나서 고대 그리스나 중세 스위스 근세 독일 용병에 이어 현대의 최강 용병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영국군은 일본군을 두려워하였는데 일본군에 경우 정글전에서의 전투에 능하였고 매 복술이 뛰어났고, 일본군에 가미카제처럼 천황 만세를 외치며 돌격하는 일본군들에게 병사들은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구르카 부대는 코웃음을 치며 정글로 들어가게 되었고 구르카 부대는 정글 속에서 일본군을 이기는 것을 넘어 말 그대로 사냥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학살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쿠쿠리 검에 맞은 일본군의 병사들은 철모와 두개골이 어깨뼈까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구르카 용병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요 6·25 때 참전해 지평리 전투 등에서 이름을 날리며 정전협정 후 유엔 사령부 소속으로 용산에 남은 병력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구르카 용병들은 가난한 조국을 위한 젊은 희생의 몸부림으로 애잔하기도 합니다. 지평리 전투 당시, 구르카 대대(500여 명)가 중공군 1개 사단 (1만여 명)을 전멸시키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지평리 전투 기록에는 1951년 7월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에 위치한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수리봉 고지전에서의 용맹한 구르카 병사들이 앞장서 고지 점령에 나섰고 격전 끝에 한국군과 미국군 사상자 수가 3000여 명에 이르렀지만,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5배의 사상자를 안겨주며 승리하였다고 전해졌습니다.


그 외에도 포틀랜드 전쟁에서의 영국군을 상대로 하던 포트 스탠리를 수비하던 아르헨티나 부대가 구르카 용병들이 온다라는 말에 항복을 하는가 하며 항복한 아르헨 부대원들은 우리를 구르카에 넘기지 말아달라며 호소하기도 하였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그 말을 들었던 구르카 용병들은 우리는 저항하지 않는 자, 포로는 건드리지 않는 다라며 불쾌해하였다고 여담처럼 전해졌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구르카 용병들은 인정을 받기까지 혹독한 훈련을 치러 선별되게 되는데요 네팔 고원지대에서 살다 보니 낮은 지대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체력이며 지구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데요, 힘들더라도 그런 혹독한 훈련을 이기고 구르카 용병이 되는 것만이 빠른 부유층에 진입을 하게 되는 지름길로써 네팔에서의 구르카 용병은 실력에 따라 영국 및 싱가포르 그리고 인도 등으로 나뉘어서 진출하게 되는데 어찌 보면 세계 최강의 용병이라 불리지만 차출되어 가는 것이 하나의 상품인 것처럼 씁쓸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구르카 용병은 영국만 아니라 인도에도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경찰로 활약하고 있다. 영국의 구르카 용병은 약 3000명으로 육군 전투병의 10%에 해당한다. 한 해 뽑는 인원은 200명. 급여는 영국군과 비슷하다. 2015년 기준 일병이 연 1만 8000파운드(약 2600만 원)로, 제대 후 네팔에서 상류층으로 지낼 수 있는 금액이다.


그 외에도 포틀랜드 전쟁에서의 영국군을 상대로 하던 포트 스탠리를 수비하던 아르헨티나 부대가 구르카 용병이 참전한다는 소식에 항복을 하는가 하며, 항복한 아르헨 부대원들은 구르카 용병들에게 넘기지만 말하 달라며 호소하기까지 하고 그 당시 그 말을 들었던 구르카 용병은 우리는 저항하지 않는 자 포로는 건드리지 않는 다라며 항복한 적군은 공격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구르카 용병들은 인정을 받기까지 혹독하게 훈련을 치워 선별하게 되는데, 구르카 용병이 되는 것이 부유층으로 가는 지름길이도 하며 출세를 위한 길이기도 하여 구르카 용병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과 힘든 훈련을 버티며 선별이 되기까지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선별되며  구르카 용병은 실력에 따라 영국 및 싱가포르 외 인도 등으로 진출하게 되며 싱가포르에서는 경찰로 활약하며 영국의 구르카 용병은 약 3천여 명의로 육군 전투병의 10%에 해당한다고 하는데요. 한 해 뽑는 인원은 200명으로 급여는 영국군과 비슷하며 2015년 기준 일병이 2600만 원으로 네팔에서 상류층에 속하게 될 수 있는 수입이라고 합니다.


구르카 용병이 되는 것이 상류층에 속하는 길이다 보니 지원 경쟁률 또한 엄청나며 50~100 : 1에 이르며, 지역 예선에서의 기본 체력 테스트를 거치고 2~3배수를 뽑아 모병소에서 최종 인월을 선별하며 체력 테스트의 하이라이트로는 도코( 전통 바구니) 레이스로 25kg의 돌을 채운 도코를 머리에 매달고 가파른 산길 6km를 30분대에 주파해야 합격 커트라인에 든다고 합니다. 싱가포르 경찰은 영국군 선발에서 떨어진 차순위  위주로 뽑히게 되며 선발 인원은 연간 300여 명 안팎으로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싱가포르 경찰 병력의 15%인 1800여 명이 구르카족이라고 합니다. 물론 많게는 700 대 1에 경쟁률을 보일 때도 있으며 구르카 용병이 되기 위해서 체력은 물론 영어 수학 등 체력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타 외적으로도 까다로운 조건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시행하는 구르카 모집 시험에서 엄청난 인원이 모이게 되며 엄청난 경쟁률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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